경교장 방문기, 백범 김구 선생이 꿈꾸던 ‘가장 아름다운 나라’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 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 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나의 소원>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중에서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볼 것인지, 국가의 3요소를 갖춘 1948년을 건국으로 볼 것 인지에 대해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그 기록을 발견하고 잠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본질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이 그토록 갈망했던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닌 ‘가장 아름다운 나라’의 가치를 되새겨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자료를 찾던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던 서울 종로구의 ‘경교장(京橋莊)’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경교장에 도착했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습니다.
강북삼성병원 입구 바로 옆, 현대식 병원 건물들 사이에 조금은 생경하게 자리 잡은 그 건물이 바로 민족의 스승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하신 역사의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귓가에 맴도는 듯했습니다.
이곳은 본래 1938년 금광업자 최창학이 자신의 저택으로 지은 ‘죽첨장’이라는 건물이었습니다.
해방 후 백범 선생은 일본식 이름을 버리고 근처 다리 이름을 따 ‘경교장’이라 개명하셨지요.
친일로 축적한 재산으로 지어진 건물이 임시정부의 청사이자 친일파 척살의 중심지가 되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경교장은 대만 대사관, 미군 주둔지, 베트남 대사관저를 거쳐 병원 본관으로 사용되며 점차 그 의미가 퇴색되어 갔습니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복원 과정을 거쳐, 2013년부터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1층 응접실
현관을 통해 1층으로 들어서자 엄숙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습니다.
1945년 12월, 해방 후 첫 국무 위원회가 열렸던 응접실을 마주하니 당시 백범 선생과 임시정부 각료들의 비장한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습니다.
당시 임시정부는 공식 정부로 인정받지 못해 투사들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만 했습니다.
귀국 당일에도 이 사실을 아는 국민이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를 접하며, 주권을 잃은 조국의 설움이 얼마나 깊었을지 가늠해 보았습니다.
선생이 그토록 열망했던 자주독립과 통일 조국의 의미가 가슴 깊이 전해져 왔습니다.
공식 만찬이 열렸던 식당에서는 조국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이 마침내 고국 땅에서 나누었을 대화들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조국’이라는 이름에 큰 감동 없이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 모습이 그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1층 귀빈식당
지하 전시실에는 임시정부의 발자취와 백범 선생의 유품들이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저격 당일 선생이 입고 계셨던 백의에 선명하게 남은 혈흔을 마주했을 때는 복받쳐 오르는 감정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사욕이 아닌 대의를 위해 당당히 사셨던 지도자의 마지막 흔적은 강렬했습니다.
백범 선생의 유품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윤봉길 의사와 맞바꾼 시계였습니다.
거사 당일 아침, “선생님, 제 시계는 이제 한 시간밖에 쓸 데가 없습니다”라며 선생의 낡은 시계와 바꾸어 찼던 윤 의사의 비장함, 그리고 “지하에서 만납시다”라며 비통하게 답하셨던 백범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선생은 서거하시는 순간까지 그 시계를 소중히 간직하셨다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의 회중시계
경교장 2층은 요인들의 숙소와 선생의 집무실로 꾸며져 있습니다.
1949년 6월 26일, 선생은 이곳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지셨습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선생은 교회에 가기 전 책상에 앉아 시집을 읽고 계셨다고 합니다.
암살 당시의 총탄자국
자주독립과 통일된 문화 국가를 꿈꾸었던 한 거인의 삶이 이토록 허망하게 멈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건국일 논란으로 대립하는 오늘의 우리를 보며 선생은 어떤 생각을 하실지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백범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그 조국을 만들어가는 일, 그래도 어쩌면 지금의 우리 나라는 선생이 꿈꾸었던 그 길을 썩 잘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이 애송하셨던 시 구절을 가슴에 새기며 글을 맺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발걸음을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
백범 선생님이 애송하셨던 조선후기 문신 이양연의 시








댓글
댓글 쓰기